일본 시코쿠 섬 북동부, 인구 1,500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 마을 가미카쓰(上勝町)는 전 세계 환경 운동가와 정책가들의 주목을 받는 제로웨이스트 도시입니다. 소각장도 매립장도 없이, 쓰레기의 80% 이상을 재활용과 재사용으로 처리하는 이 마을은 '쓰레기 없는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실험장이자 모델입니다. 본 글에서는 가미카쓰가 이룬 놀라운 제로웨이스트 성과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시스템과 지역 주민들의 참여 모습을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분리배출: 쓰레기를 ‘45가지로 나눈다는 것’의 의미
가미카쓰의 제로웨이스트는 놀라울 만큼 철저한 분리배출 체계에서 시작됩니다. 쓰레기를 단 5~6가지로 분리하는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45가지 이상의 항목으로 분리 배출해야 합니다. 플라스틱도 종류별로, 종이도 종류별로, 금속, 유리, 고무, 가전제품, 우산, 옷, 직물 등 가능한 모든 자원을 세세하게 나누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종이만 해도 '신문', '종이팩', '골판지', '광택지', '혼합 종이'로 세분되며, 플라스틱은 PET, PS, PE, PP 등 성분별로 나뉩니다. 유리병은 투명·녹색·갈색으로 색상까지 구분해 배출해야 하며, 금속류는 알루미늄, 철, 혼합금속으로 나뉩니다. 주민들은 이 복잡한 분류 기준을 외우고 실천해야 하며, 모든 쓰레기를 직접 제로웨이스트 센터에 가져와 분류해야 합니다. 각 품목별 컨테이너에는 어떤 품목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분리되어야 하는지 일본어와 그림, 예시로 안내되어 있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체계적인 분리배출 덕분에 가미카쓰는 현재 쓰레기의 약 81%를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완전한 제로웨이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소각도 매립도 없는 이 시스템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의식 있는 생활의 일부로 자리 잡은 문화입니다.
재활용과 리유스: ‘쿠루쿠루’에서 생명을 이어받는 물건들
가미카쓰의 제로웨이스트는 단지 ‘분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재사용이 가능한 물건들을 버리는 대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리유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쿠루쿠루 공방(KuruKuru Shop)’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쿠루쿠루’는 일본어로 ‘돌고 도는’이라는 의미로, 자원의 순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쿠루쿠루 공방은 주민들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옷, 가전제품, 장난감, 식기, 생활용품 등을 무료로 가져다 놓고, 다른 사람이 필요하면 무료로 가져가는 공간입니다. 이 시스템은 상업성이 전혀 없으며, 주민 스스로가 자원 관리의 주체가 됩니다. 또한 쿠루쿠루 공방 안에는 공예 작업장이 함께 마련되어 있어, 고장 난 가구나 낡은 옷 등을 수선하거나 업사이클링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재활용 쓰레기의 경우, 가미카쓰는 외부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합니다. 깨끗하게 세척하고 정확히 분리된 폐자원은 소각이나 매립 없이 산업 원료로 재생산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부 수익은 마을 운영비로 활용됩니다. 이렇게 마을은 ‘쓰레기 없는 구조’를 넘어, 자원이 순환되는 경제 시스템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역활동과 공동체 참여: 제로웨이스트는 곧 마을의 문화
가미카쓰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단순한 정책이나 행정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문화 형성입니다. 분리배출이 아무리 철저해도, 그것이 강제된 의무라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가미카쓰는 이 시스템을 ‘시민 교육’과 ‘공감의 문화’로 승화시켜 제로웨이스트를 생활 그 자체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제로웨이스트 아카데미’라는 지역 비영리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시민과 관공서, 학교, 기업, 외부 관광객을 대상으로 환경 교육과 체험 활동을 운영하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합니다. 또한 마을에서는 매년 ‘제로웨이스트 축제’를 개최하여, 분리수거 챌린지, 리사이클 퀴즈, 환경 캠페인 등을 진행합니다. 이는 환경 보호를 어렵고 귀찮은 일이 아닌, 즐겁고 가치 있는 생활문화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행정과 주민 간의 관계도 매우 유기적입니다. 가미카쓰의 환경 정책은 탑다운 방식이 아닌 보텀업 구조로, 주민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형태입니다. 마을회의나 분기별 토론회를 통해 쓰레기 분류 기준이 수정되거나, 새로운 재활용 시스템이 실험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참여가 강요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자발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입니다. 제로웨이스트는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잇는 공동체 윤리와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론
일본의 한적한 시골 마을, 가미카쓰는 규모로 보면 작지만,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자원은 반드시 순환되어야 하고, 쓰레기는 반드시 줄여야 하며,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인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로웨이스트는 거창한 계획이나 비용이 드는 정책이 아닙니다. 일상의 습관, 공동체의 연대,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만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가미카쓰’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고르고, 버리고, 나누는 모든 순간이 환경을 살리는 선택의 기회입니다. 지금, 내가 버리는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가? 가미카쓰는 우리 모두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